죽장리 5층 석탑
경북 구미시 선산읍 죽장2길 90
본문
출처 : 구미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국보 제130호, 선산 시내에서 서쪽으로 약 2㎞ 떨어진 죽장사지(竹杖寺址), 죽장사 경내에 있다. 석탑의 구성은 신라의 일반적 석탑과 같이 기단부(基壇部) 위에 몸체[옥신(屋身)]가 놓이고 그 위에 상륜부(相輪部)를 장식하고 있는데, 지대석(地臺石)에서 상륜부에 이르기까지 100여 개가 넘는 많은 석재로 구성된 점이 특히 주목된다. 기단부는 18매의 장대석으로 지대(地臺)를 구축하고, 그 위에 상하 이중의 기단을 마련하였다. 하층 기단 면석(面石)은 14매의 판석으로 결구(結構)되었고, 그 위의 갑석(甲石)은 18매석으로 구성되었다. 갑석 상면의 네 귀퉁이 합각(合角)은 지붕돌[옥개석(屋蓋石)] 상면의 합각처럼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하층 기단 갑석 위에는 15매씩의 장대석으로 짜여진 높은 굄 2단이 마련되어 그 위에 상층 기단 면석을 받치고 있다. 상층 기단 면석은 10매의 판석으로 조립되었다. 그리고 그 위의 갑석도 다수의 석재로 결구되었다. 이 탑의 이중 기단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하층 기단을 살펴보면 우주나 탱주가 전혀 보이지 않으며, 상층 기단에는 이와 달리 각 면에 세 개의 탱주(撐柱)와 양 우주(兩隅柱)가 있다. 그것도 다른 탑들처럼 새겨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우주와 탱주를 판석(板石)과 결합하여 기단부를 구성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 탱주와 우주는 후에 복원한 것으로 원래 이런 형태를 띠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부(塔身部)는 각 층이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었으나 위로 올라가면서 석재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초층 몸체는 6매석으로 조립되었고, 남쪽면에는 가로 66㎝, 세로 107㎝의 감실(龕室)이 마련되었는데, 최근에 봉안한 것으로 보이는 불상이 있다. 감실 입구에는 각형(角形)과 호형(弧形)으로 몰딩하여 액(額)을 둘렀으며, 내부 좌우의 상하에는 문을 달았던 작은 원공(圓孔)이 남아 있다. 초층 지붕돌은 4매석으로 구성되었는데, 지붕 받침은 6단이고 처마에는 낙수홈이 음각되어 있다. 낙수면은 7단의 층단을 이루고 있다. 2층 이상의 몸체는 2~4매석으로 구성되었고 3~5단의 지붕 받침이 표현되었다. 또한, 처마에는 낙수홈이 음각되었는데, 낙수면이 5·6단의 층단을 이루고 있다.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露盤)만이 남아 있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 양식인 이중 기단을 형성하고 있으나, 기단부와 탑신부에는 양 우주와 탱주가 없어 이형적(異形的)이며 오층탑이면서 초층에 감실을 낸 점이나 낮지만 다수의 석재를 조립하여 만든 기단부 형식, 지붕 양식에 있어서 낙수면에 층단을 이루는 형태는 통일신라시대 전탑(塼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일반형 석탑에서 찾기 드문 예이다. 워낙 거대한 탑이라 지대석으로부터 정상부인 노반까지 소요된 석재는 수백 개로 추산된다. 이 석탑은 높이 10m가 넘는 거대한 오층석탑으로 이러한 웅장한 석탑의 건립에는 반드시 당시의 국력이나 불교의 위치 혹은 사회적인 배경과 관계가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러한 거창한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던 때는 불교미술(佛敎美術)의 정화기인 통일신라 전성기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은 그 규모나 치석 수법으로 보아 훨씬 거작(巨作)인 당대 최대의 석탑이며 아울러 이에 따르는 사찰의 문제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나 당대의 사찰이 남향이어서 현재의 죽장사 법당이 본래의 법당지로 추정된다.